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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개발 이야기

by 디자이너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를 추진한지도 벌써 만 5년이 지났습니다.
영화 배뱅이굿을 기획하게된 계기는 이은관 명창이 왔구나 왔어...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할 때, 세상 떠나신 어머니가 너무 보구파서 눈물이 났을 때입니다.
2014년 초 저는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된 동료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고 큰 기대를 갖고 준비를 시작했는데 그 동료의 외면으로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습니다.
상처 입은 제게 바로 다가온 것이 이은관 명창의 배뱅이굿었습니다.
어려서 보았던 이은관 명창이 구순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고, 형제들 중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내가 세상에서 의지했던 유일한 분이 어머니였는데 이젠 세상에 안 계신다구 생각하니까 더욱 외롭고 슬펐습니다.
그 뒤에 저는 내가 하는 일이 영상 만드는 일인데 배뱅이굿을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를 위한 영화가 될거라는 생각에 세상 어떤 일 보다도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위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도전은 2014년 4월. 중소기업청 창업성장기술개발지원사업 1억 5천만원 짜리 과제에 독립영화 배뱅이전을 기획하여 신청했습니다. 한달 뒤 심사 결과가 나왔는데 불행히도 심사 제외 통보를 받았습니다. 비록 심사에서 제외됐지만 빨리 마음을 가다듬고 배뱅이 가족이야기와 배뱅이와 상좌중의 사랑을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그렇게 처음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몇 달 후 부산국제영화제 부대행사인 투자설명회에 참가했습니다. 처음 참가해 본 행사라 당황스럽고 낯설었지만 영화를 만들어야한 다는 생각에 체면을 던져버리고 투자자 몇 명과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이메일로 시나리오와 영화제작기획서를 투자자에게 보내고 심사를 요청했습니다. 결과는 며칠 뒤 도착했는데 상업성과 대중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투자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지만 얼마 후 인천시무형문화재영상기록물 제작을 하게되어 잠시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습니다.
2015년 5월. 다시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은관 명창의 오랜 지인이자 제가 태어난 볼음도 옆 말도 출신이신 국가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최창남 문화재를 찾아뵙고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를 의논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실시하는 4K실감콘텐츠제작과정에 참여하여 여러 방송사에서 온 스탭들과 팀을 짜서 팀별로 영상제작을 하게 되었는데 저는 A팀 조장이 되어 단편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방송 취업을 준비하던 젊은 여성이 노력 끝에 합격하는 기쁨을 아이스커피로 표현하는 짧은 내용의 영화입니다.
그렇게 단편 영화를 끝낸 후 겨우내 배뱅이굿 시나리오와 기획서를 보강한 후 더욱 힘차게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를 추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되었는데 마침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2016 Knock 투자설명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IR 교육과 멘토링 교육, IR 피칭을 거쳐 국내외 VC를 만나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그 결과 기술보증기금 문화산업 완성보증을 통해 제작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영화 촬영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갖고 평일엔 배우를 캐스팅하고 주말엔 헌팅을 다니며 팀을 꾸며나갔습니다.
그런데 스탭 구성이 쉽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자료 수집을 통해 연락이 된 스탭들과 각종 영화 단체, 기관들을 찾아 다니며 참여 인력을 부탁했지만 예산의 5분의 1만 모여진 상태라 참여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렇게 스탭 구성의 난항을 겪으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중 모집공고를 통해 들어온 제작실장을 통해 쉽게 연출제작부와 촬영조명녹음미술 스탭들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활기를 띤 프로젝트는 헌팅, 배우 캐스팅, 콘티작업을 진행하면서 촬영스케줄을 세워나갔습니다.
드디어 11월 10일부터 13일까지 4회차 촬영일정을 정하고 세트장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촬영 전까지 두번의 대본 리딩을 하는 동안 전화상으로만 연락하던 의상,분장팀을 두번째 리딩에서 만날 수 있었고 의상분장팀은 촬영 합류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의상팀은 비용을 문제삼아 팀에서 빠져나갔고 이어 분장팀도 팀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급히 의상분장팀을 모집했지만 구할 수 없었습니다. 촬영 이틀 전 분장사를 구했지만 끝내 의상팀은 구할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제가 직접 의상 대여를 해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4일 간의 촬영은 한마디로 꽝이었습니다. 4일 중 하루는 비 때문에 공쳤고 3일은 감독, 제작연출부, 촬영조명의상분장헤어 스탭들의 미숙과 부조화로 촬영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지막 촬영 날 촬영버스기사는 다음 스케줄 때문에 기다려줄 수 없다며 촬영팀을 놓고 가버렸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말입니다. 정말 마음 아픈 고생을 영화 4회차 촬영을 통해서 값지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을 감독이면서 제작자인 제가 모두 안아야하기에 그 자리가 얼마나 크고 무겁고 힘든 자리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촬영 실패로 인한 충격은 컸지만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성공한 감독들의 강연에 참석해서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면서 우리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체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메일로만 심사받던 방법을 버리고 직접 투자사를 방문해서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뒤 상담했던 투자심사역으로부터 전화 혹은 메일을 받았습니다.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말과 배급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시나리오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으니까 정말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교 선배들에게 시나리오 모니터를 부탁했는데 선배들에게서도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틈틈히 눈여겨 보았던 시나리오 작법서를 구입하고 저명한 소설가의 소설 쓰기 강좌를 수강하면서 시나리오 디벨로프를 시작했습니다. 작법서의 내용과 강좌를 통해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안 한국고전소설과 국내외 많은 명화와 시나리오를 분석하면서 시나리오 작법을 점차 배워 나갔습니다.
그렇게 7개월 반을 시나리오를 쓰면서 처음 시나리오와는 많이 다른 시나리오가 되었습니다. 처음 시나리오가 배뱅이 가족 중심이었다면 디벨롭된 시나리오는 소리꾼 동관 중심의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그리움을 주제로 처음 시나리오가 씌어졌는데 디벨로프에서는 소리꾼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의 경험을 동관에게 투영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바라본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나 할까요...
시나리오 디벨로프가 끝나고 평안도 출신 소리꾼 동관 대사에 동국대 국어학과 명예 교수이신 김영배 선생님께서 평안도 말로 변경해 해주셨습니다. 김영배 선생님은 묘향산에서 가까운 영변 출신으로 월남 이후 평안도 방언 연구에 공로가 크신 위대한 학자이십니다.
시나리오를 디벨로프 시킨 후 영화 사이트 필름메이커스에 스탭 예산 견적 모집 공고를 낸 후 들어온 견적을 바탕으로 전체 예산을 짠 후 최종적으로 제작기획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시나리와 제작기획서를 가지고 당당하게 메이저 배급사들을 찾아가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삼 주에서 한 달을 기다리자 프로젝트 심사 결과가 돌아왔습니다.
전반적인 결론은 유명한 배우, 유명한 감독, 유명한 제작사가 아니라서 투자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망스러웠습니다. 난 유명한 감독도 아니고 유명한 제작자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주인공은 소리를 잘하는 연기자여야하기 때문에 서편제의 오정혜씨와 같은 소리꾼에게 배역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소배급사들에게 시나리오와 제작기획서를 전달했습니다. 뭔가 다를것이다라는 희망을 걸고 말입니다. 그런데 중소배급사들 역시도 메이저 배급사와 다를바없이 유명 배우, 유명 감독, 유명 제작사를 선호하고 있었습니다.
갈 수록 줄어가는 희망을 붙들고 마지막으로 작년에 시나리오 완성도 부족을 지적했던 투자사들을 찾아가 시나리오와 제작기획서를 전달했습니다. 나름 준비할건 다하고 제안했으나까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는 희망을 걸고.
그러나 희망은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유명 배우, 유명 감독, 유명 제작사 아니면 투자할 수 없다는 통보였습니다.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영화 배급사, 투자사들은 유명한 배우, 유명한 감독, 유명한 제작사 아니면 투자 안하는구나!라는 결론이었습니다.
빨리 마음을 정리하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크라우드펀딩이었습니다.
2018년 11월.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투자설명회에서 해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를 알게되어 영화 펀딩을 조사하면서 대규모 제작비를 조달한 실례를 보게되었고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200만 달러를 모금하려던 창작자들이 570만 달러, 310만 달러를 모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많은 창작자들이 모금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대규모 예산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서도 조달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텀블벅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큰 제작비를 조달한 프로젝트는 찾아 볼 수는 없었지만 예술가들에게 열려있고 친절한 텀블벅 직원들에게도 고마웠고 무엇보다도 제가 영화 배뱅이굿 프로젝트로 제작비를 조달하여 국내 크라우드펀딩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배뱅이굿은 저에겐 어린시절의 통과의례와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통과의례를 거쳐 성인이 되면 좀더 자유롭고 강해지 듯이 저도 영화 배뱅이굿을 마치고 나면 더 자유롭고 멋진 창작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획, 개발 기간에 필요한 운영자금을 융통해 주었던 여러 금융 캐피탈사께 감사드리고, 전세에서 월세로 변경해 주신 집주인께도 감사드리며 저의 회사 나도밤보의 성공 가능성을 믿고 지원해주신 기술보증기금께도 감사드립니다.
꼭 성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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